
달의 숲에서 너를 놓아주던 날
남기영
그날, 너는 내 손을 놓았지.
달빛이 흐르는 숲 어귀에서.
시간은 바람처럼 느릿이 흘렀고
내 마음은 나뭇잎처럼 떠돌았어.
세상의 끝 어딘가,
너 아닌 이름들이 꽃을 피우고 있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지만
너의 이름으로 시작된 계절을
어떻게 지워야 하는지
차마 배울 수 없었어.
너와의 이별은
마치 마법이 풀리는 순간처럼,
황홀했던 모든 색이
하얗게 사라지는 일이었지.
나는 알았어,
너를 잊기 위해선 긴 시간을 지나
수많은 꿈의 강을 건너야 한다는 걸.
그리고 그 여정 속에서
나는 부서질지도 모른다는 걸.
밤마다 별빛은 너를 닮아
창가에 내려앉았고,
숨결마다 네 목소리가
바람에 실려 들려왔어.
너 말고 다른 이의 심장에
내 마음을 옮기는 일은
마치 얼어붙은 호수 위를 걷는 것처럼
두렵고 낯설었지.
너를 사랑했던 불꽃은
이 세상 어디에도 다시 피지 않을 거란 걸
난, 처음부터 알고 있었어.
내 마지막 사랑이
너이길 바랐던 마음은,
달의 끝자락에서 천천히 사라졌고
나는 그 광휘 속에서
혼자 남겨졌지.
하지만 지금은
그날 나를 놓아줘서
고맙다고 말할 수 있어.
영원이라는 환상은
모래성처럼 무너질 수 있다는 걸,
사랑 하나만으로
세상의 저주를 막을 수 없다는 걸
나는 배웠어.
너의 뒷모습을 지우는 법도,
우리의 추억을
꿈속 노래처럼 접어 두는 법도
배웠고,
너와 함께
별의 계단을 오르던 순간도 있었고,
너를 떠나보내며
어둠에 잠긴 바다를 홀로 건넌 날도 있었어.
사랑이 다른 이름을 향해
흘러가는 마법을 보았고,
그 속에서 나를 잃지 않는 주문도
조금은 익숙해졌어.
너는 나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인 마법이었고,
이별은 그 마법의 끝에서
조용히 피어난 깨달음이었어.
그래서 고마워.
그날 나를 놓아줘서.
내가 다시 현실로 걸어 나올 수 있도록
너라는 꿈에서 깨어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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