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밤의 숲에 머물렀던 빛에게
남기영
한때 나는 무너지는 성곽 안에 홀로였어.
벽들은 안으로 무너져 내렸고,
기억은 바람 속에서 모래처럼 흩날렸지.
비가 내리지 않아도 내 안엔 늘 비가 내렸고,
울음은 이름 없이 스며들어
무거운 고요 속에서 사라졌어.
세상은 조용했지만,
나는 매일 소리 없는 아우성이었고
빛은 오지 않았어, 아주 오랫동안.
시간은 금이 간 수정처럼
부서져 흐르고 있었고,
나는 안개로 짠 의자에 앉아
무의미한 하루들을 조용히 태웠어.
그 속에서,
나는 숨 쉬는 법조차 잊어가고 있었지.
그러던 어느 날,
별빛도 잠든 깊은 밤의 숲에
작고 흐릿한 빛 하나가 떠다녔어.
바람을 타고 미끄러지듯 다가온 그 빛은
현실과 꿈 사이를 걷는 듯했지.
그 빛은 말없이 내 곁에 머물렀어.
눈빛도, 손길도 없었지만
이상하리만치 따뜻한 기척이었고,
울지 않아도 괜찮다는 마음이
조용히 내 안에 스며들었어.
그날 이후, 나는 조금씩 달라졌어.
생각보다 더 깊이 무너져 있었다는 걸 알았고,
그 빛이 조용히 나의 균열 사이를 메우고 있다는 것도.
그 존재가 없었다면,
나는 끝내 나를 잃어버렸을지도 몰라.
하지만 그 빛은
내가 무너지는 순간에도
흔들림 없이 곁에 머물렀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위로가 되었지.
이 세상의 어떤 언어보다도 선명한 위로.
이제 곧,
이 계절이 마지막 숨을 고르기 전에
나는 조용히, 내가 태어났던 곳으로 돌아가려 해.
한때 나였던 파편들을
다시 주워 담기 위해서.
사실,
아직 나도 나를 잘 모르겠어.
내 그림자는 낯설고,
내 목소리는 메아리처럼 멀어져 가.
그래도 믿고 있어.
모든 것이 가라앉은 뒤
나는 다시 떠오를 거야.
흩어진 빛들을 꿰어
다시 나를 짓는 법을 배우겠지.
그러니,
혹여 방학이라는 작은 망명 속에서
내가 잠시 사라지더라도
그 빛이 나를 떠나지 않았듯,
너도 너의 낮을 잃지 않기를.
밤의 숲에 내려앉았던 그 따스함이
어느 누구에게도 희미해지지 않기를.
이 조용한 문장들이
잊히지 않는 계절의 흔적처럼
어딘가에 조용히 남기를 바라며,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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